2002년 10월, 우리 부부는 6년여간의 연애를 끝으로 부부의 연을 맺었다.
이젠 목사님의 주례사는 기억나지 않지만, 예식 1시간, 폐백 2시간의 시간이 무지하게 길었고 또 많은 기대와 설렘이 있었던 날로 기억한다.
뭐 이 부분은 한번이라도 결혼식장에 입장해보신 분이라면 모두 공감(?)하는 내용일 것 같다.ㅋ
그리고, 부푼 기대로 떠났던 태국 신혼여행..
연애시절, 당일 정말 길어서 1박 2일 동안의 짧은 여행이 전부였던 우리 부부는 태국 3박 5일의 신혼여행은 설렘 가득한 환상적인 느낌이었다. 떠나기 전까지는. ㅠㅠ
뭐. 패키지 여행이 다 그렇겠지만, 특히나 나는 태국에서의 신혼여행이 떠나기 전에 가졌던 기대감에 한참을 못 미치는 여행으로 기억하고 있고, 아내 역시 만족감이 떨어지는 여행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결혼 전 박람회 때, 여행상품 설명하는 내용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전반적으로 만족감이 떨어졌다고 해야 정답인 것 같다.
결정적으로 신혼여행 갔다 온 후, 찍었던 필름을 인화한 사진을 두 군 거리는 마음으로 확인하고, 우리 부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체 행복한 순간들이 담겨 있는 사진들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 당시 나에게는 아님전자에서 정식 수입해서 판매했던 니콘 FM2 완전 기계식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있었고, 신혼여행에 그 무겁고, 사용자의 호환성이 떨어지는 카메라를 멀리 태국까지 가지고 갔다는 사실이고, 짐의 부피 때문에 삼각대는 챙겨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태국에 와서야 땅을 치며 후회했다는 것이다.
나를 제외한 가이드, 같은 날 결혼한 패키지 팀 모두 완전 기계식 카메라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 없었다.ㅠㅠ
좋아 죽는 두사람의 모습이 담겨있어야 할 사진은 손에 꼽힐 만큼 적었고, 있다고 해도 흔들리고, 핀트 안 맞고.ㅋㅋ
솔직히 15년이나 지났지만 사진을 보는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정말 어질어질한 순간이었다.
나 자신에게 원망할 수 도 없었다.
그리고는 모든 사실을 부정하며 잊었다.
우리는 2002년 10월에 있었던 신혼여행은 각자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 그 누구도 지금까지 그날을 회상하며 이야기한 적이 없는 것 같다.ㅠㅠ
얼마 전 뭉쳐야 뜬다 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하와이 허니문 패키지여행에 꼽사리 끼어서 여행 가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어둠 속에 파묻혔던 사진이 기억이 났고, 집안 구석구석 다 뒤져서 찾았다. 하하
솔직히 다시 봐도 여~~~~~엉.. 마음에 안 든다..ㅠㅠ
요즘 같았으면, 카메라 성능 좋은 스마트폰이나 미러리스 카메라로 스냅사진 찍고, 물놀이나 활동적인 것은 액션 카메라를 이용해서 멋지게 장면을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셀카봉을 이용하여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둘의 사랑이 덤뿍담긴 사진들도 많이 찍었을 것 같다. 하하하
아날로그의 감성은 충분히 살아있는 종이에 인화된 사진이고, 사진을 담아두었던 상자에서는 오래된 종이 냄새도 향긋하게 나고 있지만, 암흑 속에서 15년간 잠자고 있었던 사진을 다시금 세상에 나오게 하고, 더 나아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화시켜 넓은 더 넓은 곳에서 사진으로의 가치를 높였다.
그런데, 흠.. 그나마 봐줄 만한 우리 부부가 같이 찍은 사진은 요.. 4장이 전부이다... 엉엉 ㅠㅠ
그래도 인생에서 제일 행복했던 날, 행복한 순간이라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지겠지만 많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기억을 되새길 수 있어 좋다.
과거에 묻혀 살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과거를 망각하고 싶지도 않다.
간간히 내 기억 저편에 좋은 일, 기쁜 일, 슬픈 일, 부끄러운 일 들이 이런 사진들을 보면서 다시금 미소 짓게 한다.
또는 잊혀서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람들도 긴 시간이 지난 후에 자세하지는 않지만, 누가 누구인지 윤곽은 되살아 난다.
그때, 같은 날, 비슷한 시간, 다른 공간에서 각자의 인연과 부부의 연을 맺고, 머나먼 타국에서 같이 만나, 같은 장소, 같은 시간을 보냈던 이 젊은 부부들은 지금 다 잘살고 있는지 순간 궁금해진다. 하하
사진 때문에 마음 상했던 신혼여행이었지만, 그 사진으로 말미암아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사진 속 추억을 15년이 지난 지금, 그때로 살짝 되돌아가 본다.
요즘 가끔 추억을 찾고 싶을 때가 많아지는 것 같다. 나도 이제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소리가 들린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