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약 만 3년 1개월 동안 대한민국 전역을 초토화되다시피 한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가 7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세상에서 가장 뼈아픈 경험을 했으며, 그 당시를 살아온 많은 사람들 뇌리에 잊지 못할 아픔으로 남겨져 있을 것이다.
전쟁이라는 것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로서는 상상도 못 할 만큼이나 아프고, 절절한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만 전해 들었던 것이 전부이다.
내 고향이자, 아버지의 고향이자, 할아버지의 고향은 한국전 당시 최후의 방어 전선이었던 낙동강을 앞에 두고 있는 곳이다.
전쟁 발발 후, 한 달여 만에 무능한 정부와 변변치 않은 전투력과 무장능력으로 속수무책으로 낙동강 전선까지 밀려내려 왔고, 기계/안강 전투, 다부동 전투 등 살벌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은 아니었지만, 강 너머로는 국군인지 연합군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군이 주둔하고 있고, 내 고향마을 뒷산은 북한군의 포진지가 있었다고 한다.
전쟁 초기에 아군이 쏘는 포탄을 피해 뒷산 깊지 않은 동굴에서 낮에는 피해있다가, 해가지면 집으로 내려와서 집안을 돌보고, 다시 피신하는 생활을 이어갔고 한다.
아군이 쏘는 포가 산허리를 치는 소리는 정말 무섭고, 흩어지는 돌덩어리들은 오금을 저리도록 만들었다고 하니, 그 얼마나 공포스러운 나날들을 보냈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다.
그 당시, 할머니는 저녁에 소 먹이를 주기 위해서 끌고 나갔다가, 북한군을 만나 우리 집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소 한 마리를 빼앗겼다고 한다. 그런데 그냥 빼앗아간 것이 아니라, 나중에 북쪽이 이겨서 통일이 되면 관할 지소에서 소 값을 받아가라는 금액이 적인 영수증을 써줬다고 한다.
그리고, 그 영수증은 천추의 한으로 평생을 그렇게 품에 넣고, 돌아가시기 몇 년 전까지 보관하고 계셨다가, 소 값을 받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셨다.
가슴 아픈 사연은, 길보다 약간 높은 위치의 집에 인적을 발견하고, 강 건너 국군이 쏜 포탄에 새댁 식구가 전멸했고, 바로 그 길옆에 아버지가 지나갔는데, 담벼락 바로 밑에 있어서 무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면서 65년이나 지난 시간이지만, 그 시간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계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전쟁의 참상을 느껴본다.
인천 상륙작전의 성공으로 북한군이 물러나고나 후, 일대 정리에 들어간 국군에 의해 그 지역의 동네 사람들과 함께, 좌익으로 몰려 끌려가던 할아버지는 몇몇 사람들과 대열에서 도망쳐서 돌아왔는데, 그때 끌려갔던 사람들 중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은 극히 일부분이라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도 기억난다.
내 기억이 맞다면, 경남 가창으로 끌려갔다고 하는 것 같았는데, 아마 그 유명한 가창 양민 학살사건의 일부분이지 않나 싶다.
정말 깡촌 마을, 도시로 갈려면 산 몇 개는 넘어야 하는 그런 마을 사람들이 우익이 뭔지, 좌익이 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그저 묵묵하게 땅을 일구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이, 배고픈 사람 밥 한번 먹여줬다고 빨갱이, 좌익이라는 죄목으로 학살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어쩌면 적군보다 더 무서운 사람들이 누구인지 명백해지는 것 같다.
※ 그 후, 할아버지는 경찰지소에 가서 자수하고 혐의를 모두 풀었다고 했다.
정치로 시작된 전쟁에서 가장 피해를 입은 것은, 다름 아닌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지 않나 싶다.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전쟁이라는 단어가 없어지기를 바라고, 세계 유일의 휴전국으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옛날의 과오를 잊어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아버지께서 해주시던 이야기, 6.25라는 전쟁의 극히 단편이지만,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끔 만든다. 앞으로 내가 나이 들고 늙어지고, 사람으로서 생을 다하는 날이면 이 이야기의 역사도 끝이 날 것이다. 아니 끝나기를 바랄 것이다.
"좋은 전쟁이란 없고, 나쁜 평화 또한 없다."라는 문구가 떠오르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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