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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 2일의 꿈, 영남대로를 걷다. #3 성공을 위한 멈춤

[ESAJIN.KR] 서관덕의 시간이 머문 작은공간™ 2013. 1. 18.

그 옛날 영남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가던 옛길.

그 1박 2일의 꿈같은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1박 2일의 꿈, 영남대로를 걷다. #2 시련은 소리없이

그 옛날 영남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가던 옛길. 그 1박 2일의 꿈같은 도보여행을 시작한다. 1박 2일의 꿈, 영남대로를 걷다. #1 여정의 시작 그 옛날 영남 선비들이 과거시험 보러 가던 옛길. 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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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기획과 준비로 허술하게 출발한 영남대로 도보여행 세 번째 이야기를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무릎 통증과 갑자기 몰아치는 비바람 속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 결말이 궁금하다.

 

살아야 한다.

10. 18:00... 다 채우지 못한 하루 일정. (약 30km 구간)

 

강한 비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걷는데, 멀리서 반가운 모텔의 빨간 간판이 보인다. 

그곳이 어느 방향으로 있는지 지도를 확인해 볼 겨를도 없고, 확인해 보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오직.. 눈에는 모텔이라는 간판 글자만 눈에 꽂여서, 아픈 다리는 자동으로 그 방향으로 옮겨진다.

 

엄청난 스트레스에서의 해방감 때문일까?

모텔 수부에서 계산하고, 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서 멈췄다.

 

젠장.. 젠장.. 무릎이 굽혀지지가 않는다.

 

계단 난간을 부여잡고, 기어 올라가다시피 엉거주춤 3층 방까지 올라갔다..

"3층에 방을 준... 주인아저씨.. 미워..ㅡ,.ㅡ; "

 

따뜻한 물 받아놓고, 2시간 정도 따뜻하게 몸 녹이고, 다리 마사지하고 나니 배고픔이 밀려온다.

 

나갈 수 없으니 배달시켜야 하는데, 오늘 출발할 때부터 먹고 싶었던, 얼큰한 짬뽕 한 그릇 시키려고 전화했더니, 쉬는 날이라고..ㅡ,.ㅡ;

배달되는 것이라고는 치킨밖에 없는 암담한 상황을 맞이 하고야 말았다..ㅡ,.ㅡ;

ㅋㅋ.. 누구를 탓하랴..ㅎㅎㅎㅎ

 

그렇게 그렇게... 힘든 하루를 마감했다.

 

준비해온 갖가지(?) 비상약품들.

 

다른 것은 모르겠는데, 스프레이 파스와 압박붕대는 걸어오는 내내 굉장히 유용하게 사용했다.. 

 

바보가 됐지만, 오늘 하루 무지하게 고생한 내 왼쪽 무릎.

 

2시간가량, 따뜻하게 샤워 및 온찜질을 마치고, 마사지하고, 스프레이 파스 뿌리고 안마하고, 압박붕대 감아서 최대한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했다.

 

내일이 걱정이다.

완치는 아니더라도, 오늘과 같은 통증만 없었으면 좋겠다.

 

출발 때부터 먹고 싶었던 짬뽕은 고사하고, 이 모텔 주위에는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ㅡ,.ㅡ;

 

우 씨... 왜 또, 카드결제는 안 되는 거야...ㅠㅠ

아침 이후로 제대로 먹은 것이 없어, 수중에 있는 돈 탈탈 털어, 값 비싼 후라이드 치킨 한 마리와 소주 한 병 시켜놓고, 혼자 다 먹었다.

 

그냥 속된 말로 혼자 지랄 난리 부르스 췄다.ㅋ

 

폭풍우 같은 비에서 나를 구해준 고마운 비닐 우의

날씨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이서면 넘어오면서 어느 낚시 집에서 구입했고, 이후 몇 년 동안 버리지 않고 집에 보관한 기억이 난다.ㅎㅎ

 

출발은 좋았다.

11. 09:00.. 산뜻하게 새로운 마음으로.

 

비는 새벽까지 줄기차게 오더니 아침에는 산뜻하게, 멈춰있었다.

물론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차 있었지만, 더 이상 비는 올 것 같지 않았다.

 

전날..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계획했던 일정에서 조금 벗어나 버려서, 조금은 촉박하게 움직여야 되는 상황이지만, 어젯밤 숙소에서 찜질과 마사지, 그리고 편안한 숙면 덕분에, 출발할 때 다리 상황은 어제보다 훨씬 좋아졌다

걱정 많이 했는데, 걷는 데는 크게 지장이 없어 보였다.

 

외딴 촌 동네 모텔이어서 주위에 아침을 먹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당초 계획했던, 청도읍까지 나가야만 아침을 겨우 찾아 먹을 수 있을 같다.

 

어제 모텔에 들어올 때, 지도 확인 없이 무작정 들어와 현재 위치가 어디인지 확인이 필요했다.

 

근데 어찌 된 일인지 원래 내가 걸어야 되는 경로상에 위치하고 있는 게 아닌가..ㅋㅋ

전날 수정한 계획을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왔다.

어쩔 수 없이 본래 경로로.. 이동..^^

 

계획된 일정은 아니었지만, 하룻밤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해 준 모텔.

 

"주인아저씨가.. 3층에다가 방을 주는 바람에 힘들었지만, 나중에 이곳에 또 오게 되면,  또 묵고 싶은 곳이다."라고 그 당시 생각했지만, 이후 단 한 번도 가본 적 없다.

 

새벽까지 비가 온 탓에 산에는 아직 물안개가 다 거치지 않았다.

 

더 이상 비는 올 것 같지 않다. 상괘 하게 출발하자.

다리가 어제처럼 또 문제가 생기지 않게 조심조심해서.

 

길가 과수원에서는 복숭아나무에 가 푸르름을 마음껏 뽐내며, 풋풋한 열매가 달려있다.

 

내 고향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과수원이 길가에 있다는 게 참 신기하다.

 

아마.. 이 과수원의 주인아주머니인 듯.

아침 상 물리고, 다시 고된 일터에서 하루를 시작하시고 있다.

 

 

12. 09:30..  청도읍성, 처음으로 구경하다. (약 31km 구간)

 

다리를 아껴야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이동속도가 어제보다 훨씬 느리다.

30분 동안 1km 걸었다..ㅡ,.ㅡ;

 

지금 걷고 있는 곳이 청도군 화양면 소재지이다.

이곳에서 도주관, 청도 척화비, 청도읍성, 석빙고 등 청도의 문화재를 보고, 사진 찍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만약, 어제 수정된 계획대로 갔다면, 보지 못했을 문화재를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청도읍성은 전체를 복원하지는 않았지만, 일부 복원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는 "읍성이 위치한 자리"라고 만, 표시 한 곳이 많은데, 청도 읍성은 현재 일부 복원되었다.

 

역시, 지방 읍 소재지라 충분히 복원할 수 있었으리라 생각된다.

옛 문화재를 복원하고 관리하는 것은 후손들의 의무일 것이다.

 

이렇게 대략 한 30분 정도 구경하면서, 사진이면서 서서히 목적지까지 이동했다.

 

청도 도주관, 화양면 사무소 바로 옆에 있는 원형 그대로의 고건축물이다.

도주관은 조선시대 경상북도 청도군(淸道郡)의 객사(客舍)로 사용하던 건축물이다.


청도 도주관.

1985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華陽邑) 서상리에 있으며, 도주란 이름은 청도군의 다른 이름이다.

건립 시기는 조선 현종(顯宗) 때인 1670년 경이다.

 

나지막한 담벼락 기와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훈치 하나는 끝장나게 좋다.

 

현재 정청과 동헌만 남아 있으며, 일제강점기에 화양면 사무소로 사용하는 동안, 바닥과 벽을 개조하였으나, 나머지 건물은 원래의 모습 그대로이다.

원래 서헌도 있었으나 파괴되어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민가들이 들어섰으며, 청도군이 소유·관리한다. 

 

도주관 입구에 있는 청도 척화비.

이 척화비의 비문 내용이 현재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구한말, 조선왕조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비문에는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辛未立 (양이 침범 비전 즉 화 주화 매국 계아만년자손 병 인작 신미 립)

즉, '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면 나라를 파는 것이 된다.

우리의 자손만대에 경고 하노라. 병인년에 쓰고 신미년에 세우다'라고 적혀 있다. 

 

1985년 8월 5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1866년(고종 3)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치른 뒤 흥선대원군이 쇄국의 결의를 굳히고, 온 국민에게 외세의 침입을 경계하기 위해 1871년 4월을 기해, 서울을 비롯하여 전국의 요소에 세운 척화비 중 하나이다. 

 

대부분의 척화비는 1882년(고종 19년) 임오군란 이후 철거되고 장기와 구미 등에 4∼5기만 남아 있다.

도로변에 세워져 있던 것을 조선시대 객사로 쓰이던 건물인 도주관으로 옮겨놓았다.

비문은 앞면에만 쓰여 있으며 비석의 옥개석은 없다. 

 

청도 도주관에서 청도읍성 있는 곳으로 가는 골목길..

돌담이 아닌 블록 벽이지만, 고즈넉한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든다.

 

청도읍성.

대부분 큰 고을에는 읍성이 있었지만, 지금은 거의 위치만 알리는 푯말만 존재할 뿐, 그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청도읍성은, 축조 형태도, 여척의 구조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성벽 일부와 기저만 남아있는 형태에서 지금과 같이 개축하여 복원해 놓고 있다.

 

1995년 1월 14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103호로 지정되었다.

원래의 성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으며 석성과 토성을 혼합해서 쌓은 것이었다.

조선시대 선조 때 부산에서 서울을 향하는 주요 도로변 성지를 일제히 수축하는 과정에서 청도군수 이은휘가, 석축으로 다시 쌓은 것으로 1590년(선조 23)에 착수하여 1592년(선조 25)에 준공하였다. 

 

성의 규모는 둘레가 1.88km, 높이가 1.7m, 성가퀴(성 위에 덧쌓은 낮은 담) 600첩이었다.

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 성으로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다.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협 축벽이다. 임진왜란 때 동·서·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의 읍성 철거정책으로 성벽이 다시 헐리고 문루도 제거되었다.

 

청도읍성 북쪽 문루 위에서 바라본 청도 풍경..

비록 일제강점기 때 형태를 잃어버렸지만, 후손들의 노력으로 성곽과 문루는 참 멋지게 복원되었다....

 

청도 도주줄다리기(화양 큰 줄다리기)에 쓰였던, 볏짚과 새끼줄로 만든 대형 줄다리기

아마, 올초 음력 정월대보름 때 사용했을 것이다.

 

화양 줄다리기가 영남의 줄다리기라 할 만큼 유명해진 것은 그 행사 규모의 크기가 엄청나고,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다른 고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유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줄다리기의 기원에 대하여는 확실치 않으나 음력 정월대보름을 중심으로 한 부락 또는 한 지역을 중심으로 동. 사또는 남. 북으로 편을 갈라 남녀노소의 마을 사람들이 줄을 당기어

승패를 다투고 그해의 흉풍과 복을 점치기도 한 민속놀이다.

 

이러한 줄다리기는 주로 벼농사를 중심으로 하는 남부지방에서 성행한 정세적 연중행사로 삼한 이래 벼농사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화양 줄다리기도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고대사 회로부터 행해진 민속놀이였을 것으로 추측되며, 현재 문장상으로는 18세기에는 도주 줄, 19세기에는 영남 줄, 20세기 초반에는 읍내 줄, 1983년부터는 화양 줄이라 부르고 있다.

 

청도 석빙고.

보물 제323호로 지정되어 국가에서 관리되는 전국에서 가장 오래된 석빙고이다.

 

겉모습은 보잘것없어 보이는데, 가까이 가서 안을 보니 굉장히 넓고 깊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 옛 선조들의 축조 기술을 엿볼 수 있었다.

 

이 빙고는 인위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겨울철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 여름, 가을까지 사용하였다.

청도읍성 동문 동상리 구릉에 위치하고 크기가 길이 14.75m, 넓이 5m 높이 4.4m로 화강암을 지하에서 아치 모양으로 틀어 올려 쌓아 올리고 다듬은 돌로 홍예를 올린 후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석빙고의 입구는 서쪽에 있으며 입구의 출입문은 지금은 없어졌고 계단을 따라 안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바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사가 졌으며, 흙을 단단하게 다진 바닥에 돌을 깔았다.

 

배수는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배수로의 경사를 따라 가운데 배수구에 모여 외부로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천정은 아치형으로 된 10개의 돌을 짜서 틀어 올려 4개의 보를 만들었다.

이 보위에다 거대한 판석을 덮어 천정을 만들었는데, 이들 개석(蓋石)은 거의 파괴 또는 없어지고 몇 개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으며, 환기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도 석빙고는 조선 숙종 39년(1713년) 2월 11일에 진사 박상고(進士 朴尙古)가 착공하여 같은 해 5월 5일에 준공했다. 

빙고 비문에는 『전면 : 始於二月十一日至五月五日而訖盖役衆五千四百五十一皆一日赴役成石梯六百七役二十日石工十三治匠三木手一粮米五三石瓦功錢三百兩正鐵一千四百三十八斤口三百八十四石』

『후면 : 癸巳五月初六日立 左監 衝黃亦鳳 進士 朴尙古 左色貢生 崔世哲 幼學 李義孝 都色貢生 朴以載 庫直 金千世 幼學 左色貢生 朴徽碩 右  李胃善 治 朴世  右 判官 金汝俊』로 기록되어 있어 축조 당시 석공이 13명, 목수와 치공 등 연인원 6천74명 정철 1,438근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빙고는 신라 초기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오산지(鰲山誌)에는  당초 청도읍성 북문밖에 있었는데, 토굴로 만들어 협소하고 허물어져 이곳에 다시 축조하였다고 하며, 삼국사기(三國史記)에도 신라 지증왕 때 얼음을 저장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전국에 보존되고 있는 6기의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된 석빙고이며, 규모도 제일 큰 소중한 유산이다.

 

한계를 깨닫다.

13. 10:30.. 1차 목적지 도착.. 그리고.. 중대한 결정. (약 33.5km 구간)

 

출발할 때의 다리 상태는 진짜 좋았다.

하지만, 크게 무리하지 않게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약발이 다 된 듯, 또 아파 오기 시작한다.

급기야 어제와 같이 걷기조차 힘든 상황까지 온 것 같다.

 

왼쪽 무릎 때문에 왼 다리 전체에 힘이 들어가지 않은 상태이다.

1차 목적지를 약 2km 앞에 두고 인정하기 싫었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했다.

 

"그래.. 여기까지 하자. 짧은 계획과 어설픈 준비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넌 대단한 일을 했다."

"여기서 멈춘다고, 너를 욕하거나 질타할 사람은 없다."

"그래.. 여기서 멈추자... 여기서 멈추자......."

눈물이 나온다...

 

이러한 뼈아픈 생각과 마음을 가졌지만, 최소한  처음 계획한 1차 경유지까지는 가야 되는 상황이다.

포기하더라도, 절반은 걸어야 되지 않겠는가?

앞으로 2km. 조금만 더 버텨봐!

 

"내 사랑하는 다리야.."

 

청도까지 3km.

조금만 가면 1차 목적지이다.

다리의 상태가 갈수록 악화된다..

 

조금만 더 버티자.. 조금만 더...

 

청도의 유명한 행사인 "청도 소싸움대회 기념 탑"

 

꽃 탑 조형물이 청도 입구에 이쁘게 만들어져 있다.

개인적으로 소싸움을 한 번도 구경한 적이 없지만, 아내의 말로는 정말 박진감 넘치고 재미있다고 한다. 

 

통증이 아픔으로, 이제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그래 여기까지 하자. 짧은 계획과 어설픈 준비로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넌, 대단한 일을 했다"

"여기서 멈춘다고.. 너를 욕하거나, 질타할 사람은 없다.."

"그래.. 멈추자...."

 

"하지만 다리야.. 사랑하는 다리야 조금만 버텨라. 집에는 가야지."

 

청도읍 입구에서부터 이쁘게 단장되어 있는 가로등 화단.

 

참 특이하게 꾸며놓은 화단에 계속 눈이 간다.

 

 

14. 11:30분... 눈물 담긴 짬뽕, 그리고. (약 35.5km)

 

계획한 1차 경유지, 청도역 도착. 

가슴이.. 싸~~ 하다.

극한의 상황까지 가보지도 못하고, 계획한 구간을 완주하지도 못하고, 단지 한쪽 다리에 발생한 에러 때문에 나머지 일정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에.. 나를 원망했다.

착잡하다... 슬프다... 그리고.. 미안하다...

 

눈 앞에,  중국음식점이 보인다.

어제 늦은 아침을 제외하고, 제대로 먹은 게 없다.

 

그리고, 출발할 때부터 먹고 싶었던 중국집 간판이 포기라는 단어와 함께 눈에 보인다.

막판 다리 상태는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은 걷지 못하고 삼각대에 의지해서 다리를 끌고 가야 되는 상황이고, 계단은 난간이 없으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인데, 마지막으로 위안 삼아 역에서 내려가, 꾸역꾸역 정말 맛나게 먹었다.

 

기차표를 발권했다.

한편으로는 홀가분하다. 

또 한편으로는 씁쓸하다.

아니 정확하게 내 심정이 어떤지 모르겠다.

 

만감이 교차하고, 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간다.

 

패기 넘치는 황소들의 싸움.

그 황소들의 패기를 내가 가져야 되었어야 했다.

37살 소띠, 소띠의 해, 그리고 소싸움이 유명한 청도.

나는 나와 관련된 소의 고장에서, 포기라는 단어의 쓰라림을 배웠다.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이제는 무언가에 의지하지 않으면 걷기조차 힘든 상황이다.

사진의 경부선 선로를 넘기 위해 고가도로의 오르막길을 못 올라 배낭 옆에 매달아 놓았던, 삼각대를 지팡이 삼아 올랐다..

 

주말 오전(?)이라 청도 중심가는 한적하다.

간간히 자전거 라이더만 쌩쌩 지나간다.

 

청도역으로 올라가는 오르막길..ㅡ,.ㅡ;

 

옆으로 펼쳐져있는 좌판대에서 소규모 장이 열렸다..

청도의 특산품 및 농산물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짬뽕.

출발할 때부터 간절히 찾았건만, 내 고통스러운 시간 동안은 절대 보이지 않았던 그곳이..

 

눈앞에 보인다...

 

그때 먹었던, 짬뽕 국물 맛은 평생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15. 12:20분... 대구행 기차.

 

"잠시 후 경산, 대구행 열차가 4번 홈으로 들어옵니다. 선로 가까이에 계시는 손님은 안전선 뒤로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짧았던, 1박 2일의 도보여행이 끝난 순간이다.

 

총 이동거리 약 35.5km (지도상 거리), 이동시간 12시간 20분...

 

많은 것 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하고, 또 포기해야 할 때 포기라는 단어도 배웠던, 비록 완주는 못했지만 좋은 경험을 했던 도보 여행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집으로 이제 간다.

 

청도역에서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그곳에 오래된 선조들의 물건들이 설명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시간이 많은 쫌 여유롭게 사진도 찍고 할 것인데,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다리 때문에 빨리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다.

 

헉.......

계단 오르는 것도.. 고통스러워 인상 쓰며 올랐는데, 나려 가는 건 더 고통스럽다.

 

진짜, 나 자신한테 짜증도 나고 미워지려고 한다.

이 저질 지구력...ㅡ,.ㅡ;

 

먹먹하다... 지금까지의 고생이 머릿속에서 잊혔다.

 

참 오랜만에 타보는 무궁화호 열차, 이것이 이번 여행의 마지막 사진이다...

 

총 이동거리 약 35.5km (대구에서 청도까지 지도상 거리),

이동시간 12시간 20분...

 

다음을 기약하며,다음을 화이팅 하며.

 

에필로그

 

내 나이 37살....

많다 면, 많은 나이고,  적다 면, 적은 적은 나이이다.

운동이라고는 쥐뿔도 안 하던 내가, 도보여행이라는 큰(?) 계획을 세우고 실행했다. 

그리고, 포기하기 전까지, 나는 20살 파릇한 그때로 되돌아갔다는 느낌이 들었다.

 

멋 모르고, 무서운 것 없이, 무조건 고.. 고.. 고.. 를 외쳤던 그 피 끓는 혈기를 가진, 그때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좋았다.

 

하지만, 현실은 참으로 잔혹했다.

 

이젠 20대의 혈기만을 생각하면 안 된다는 것을, 사회에 찌든 것들이 너무 많이 나에게 들어와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한 날이다.

 

나는, 한 가정을 꾸려가고 있는 37살의 배불 둑이 아저씨이고, 지금껏 살아왔던 것보다, 앞으로 이 행복한 가정을 죽을 때까지 이끌어 나가려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번 실패한 여행을 통해서  깨달았다..

 

이 실패로 내가 갖추지 못한 것들  버려야 하는 것들을 알았다.

이제 그것들을 실천해 나가는 용기만 갖추면 된다.

 

짧지만 용기 있게 걸어왔던, 그 거리 이상으로 용기를 가지고 실천할 것이다.

 

"파이팅.. 서관덕"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에게 감사의 말씀드립니다.

이번에는 실패로 끝났지만...

다음에는 꼭 성공이라는 단어로 찾아뵙겠습니다.

 


※ 2009년 5월 2일~3일간 영남대로 대구~청도 간 도보여행으로 촬영

※ 2009년 5월 30일, 첫 포스팅 (싸이블로그, 현재 폐쇄)

※ 2020년 1차 포스팅 수정 (esajin.kr)

※ 2021년 4월 싸이블로그 폐쇄로 사진 재업로드 및 분할 포스팅

 

 


자료 및 참고 사이트 : http://www.jayuchon.com/walk.html

자료 및 참고 사이트 : 청도군청 

참고 서적 : 영남대로 신정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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