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여행]밀양 표충사 - 사명대사의 충훈이 살아있는 사찰

Posted by 서관덕 서관덕의 시간이 머문 작은공간™
2012.10.30 09:00 발길 닿는 곳/경상도 기행/여행
밀양 여행 두번째 이야기 밀양 표충사(表忠寺), 밀양 팔경중 표충사 사계라고 해서 제 삼경에 당당히 올라가 있는 멋지고 화려한 표충사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밀린 숙제를 하나 해결한다.하하하
지난 2012년 8월 휴가때 나홀로 떠난 밀양으로의 여행의 최종 목적지인 밀양 표충사, 앞전에 포스팅한 밀양 영남루의 여행사진은 전초전이였다.

솔직히 일정상 표충사의 사진이 먼저 포스팅 되었으야 하지만, 시간관계상 어쩔 수 없이 반대로 포스팅 하지만 너무 개의치 말자..^^

가을에 보는 여름 표충사의 모습, 솔직히 자금처럼 온 산이 울긋불긋 알록달록 색깔옷을 입고 있다면, 또 다른 묘미를 보이겠지만, 앞으로 최소 6개월간은 보질 못할 푸르름과 함께하는 표충사의 모습을 포스팅해본다. 

 

밀양 표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각주:1]이다. 임진왜란 때 승병(僧兵)을 일으켜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훈(忠勳)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표충사당(表忠祠堂)이 있는 절이다.

원래 이곳에는 원효(元曉)가 창건한 죽림사(竹林寺)를 신라 흥덕왕 때 황면(黃面)이 재건하여 영정사(靈井寺)로 개칭한 절이 있었다. 표충사라는 이름은 사명대사를 제향하는 사당을 당시 서원(書院)의 격(格)으로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 편액하고 일반적으로 표충사로 불렀는데, 이 사당을 사찰에서 수호(守護)하여 왔으므로 사(祠)가 사(寺)로 바꾸어진 것이다.

원래의 표충사(表忠祠)는 밀양시 영축산에 있던 백하암(白霞庵) 자리에 있었으며, 사명대사의 제사를 모시기 위하여 나라에서 사원(祠院)을 세우고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그 뒤 병자호란이 일어나 승려들이 흩어지고 폐허가 되었던 것을 1714년(숙종 40)에 밀양 군수 김창석(金昌錫)이 사명대사의 충훈을 알고 퇴폐된 것을 민망스럽게 여겨 지방유지와 승려를 불러 사우를 다시 세울 것을 의논하였다.

그 뒤 남붕(南鵬)이 크게 중창하고자 1738년(영조 14)에 사명대사의 행적(行蹟)을 갖추어 임금에게 올리니, 임금이 교지를 내려 표충사의 잡역(雜役)을 면제하고, 전답(田畓) 5결(結)을 내리고 경상도 관찰사에게 중수하도록 명하였다. 이때 남붕이 총책임을 맡고, 연초(演初)·취안(翠眼)·최심(最心)·상현(尙玄) 등이 도왔다. 사우를 3칸으로 하고 단청을 하였으며, 사명대사의 영정을 중앙에 모시고 동쪽에 서산대사, 서쪽에 기허당을 각각 모셨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인 대광전, 팔상전, 명부전,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2호인 만일루, 표충서원 등이 있다. 또한 국보 제75호인 청동함은향완(靑銅含銀香垸)은 1177년(명종 7)에 제작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고려시대 향로이다.
이 밖에도 보물 제467호인 표충사 삼층석탑, 중요민속자료 제29호인 사명대사의 금란가사(錦襴袈裟)와 장삼(長衫),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4호인 표충사 석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인 표충사비 등이 있다. 절 일원이 경상남도 기념물 제17호로 지정되어 있다.
발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http://encykorea.aks.ac.kr/)

덥다.. 더워, 무더위가 한창 기승일 때, 밀양 버스터미널에서 표충사행 버스에 몸을 싷었다. 대략 40여분 정도 달렸을까? 어느듯 표충사 아래쪽에 주차장과 각종 음식점이 절비해 있는 상업지역(종점)에 하차하였다.

오전이였지만, 표충사 계곡에서 휴가에 맞춰 야영을 즐기는 사람, 계곡의 시원함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이미 북쩍그리고 있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있다. 도대체 왜???? 이런곳에는 표충사 올라가는 표지판 하나 없는거야?? 아님 내가 못찾는거야???
우씨.. 갑자기 김천 직지사 올라가는 길이 살짝생각난다. 그래도 그긴, 조그마하게라도 있었지만, 여긴 내가 못찾았는지 없다.ㅋㅋ

 

임진란, 왜군과 맞서 싸운 유정(惟政) 사명대사의 호국의 얼이 살아있는 곳으로 들어가보자.

 

많은 인파로 북쩍거리는 상업지구를 벗어나 약 20여분 걸어 올가가면, 표충사 매표소가 나오고, (성인 1인 입장료가 3,000원, 차량을 가지고 들어가면, 2,000원 추가 징수), 바로 표충사의 첫 관문인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이란 명칭은 바로 이런 건축적인 특징에서 붙여지게 된 것인데, 불교에서는 이러한 모습에 비추어 일심(一心)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즉 신성한 사찰에 들어서기 전에 흐트러진 마음을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다.
어떠한 종교이든, 그 곳으로 들어갈때에는 누구나 할껏 없이 정갈 마음가짐으로 들어갈야 할 것이다. 그 곳이 다른 종교집단이라도 말이다.

 

표충사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누각은 수충루(酬忠樓) 라는 이름의 누각이다. 그런데, 상당히 특이한 이다. 보통의 사찰에서는 찾아보기 드문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이유를 찾아보니, 서명대사의 위패와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위패를 모신 표충서원이 바로 이곳 표충사 내에 있기 때문에, 정문을 일반 서원처럼 정문에 3문 누각을 세웠던 것이다.

 

수충루 정문을 들어가서, 바로 왼쪽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서명대사의 위패와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표충서원(表忠書院)과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구국의 큰 공을 세운 휴정(休靜:西山大師)·유정(惟政:四溟大師)·기허당(騎虛堂) 3대사의 충렬을 기리기 위하여 사당(祠堂)으로 설립하고 선조로부터 표충서원(表忠書院)이라는 사액(賜額)을 받았다고 한다. 서원 내에는 3대사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1972년 2월 12일 경남유형문화재 제52호로 지정되었다

여기서 한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서원(書院)이라 함은, 유교문화를 바탕으로 한 공간인데, 어떻게 불교문화와 같은 공간에 있을까?? 이것은 위에 표충사를 전체적으로 나타낸 글에서 보듯이 사명대사의 위패를 모시는 유교적 서원인 표충사(表忠祠)를 수호하기 위해서 본래 영정사(靈井寺)인데, 표충사(表忠寺)로 개명한 사찰이다.
즉, 일주문과 통과한 후, 만나는 수충루를 포함한 표충사(表忠祠)는 유교적 공간이고,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사천왕문을 넘어서면 불교문화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이곳 표충사(表忠祠)와 표충사(表忠寺)는 불교와 유교가 통합된 한국사찰의 독특하고 유연성을 보여 주고 있다. 

표충사(表忠祠)과 표충서원(表忠書院)
1839년(헌종 5)에 이건하면서 대광전 옆 지금의 팔상전이 있는 곳에 위치해, 표충서원이란 이름으로 있었으나 이후 1971년 팔상전과 자리를 바꾸었으며, 최근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지금의 위치로 옮겨지어 표충사라고 편액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여느 전각들과는 달리 전면의 한 칸 퇴를 물려 방을 들인 것이 이채롭다.
내부에는 사명대사ㆍ서산대사ㆍ기허대사의 진영을 봉안하고, 매년 음력 3월과 9월 초정일(初丁日)에 제향(祭享)을 올리고 있다.
자료참고 - 밀양 표충사 홈페이지 (http://pyochungsa.or.kr/)

 

저 멀리 사천왕문이(四天王門)이 보인다. 표충사은 특색있는 사찰로, 보통은 출입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이 수호신들에 의해서 도량 내의 모든 악귀가 물러난 청정도량이라는 신성관념을 가지게 하려는 데도 뜻이 있겠지만, 여기서는 또 다른 의미도 있다. 앞에서 적어놨지만 바로, 유교문화와 불교문화를 구분하기 위한 뜻도 같이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1968년 12월 19일 보물 제467호로 지정된, 표충사 삼층석탑이 사천왕문을 지나오면 보인다. 언듯봐도 유구한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3층석탑과 석등, 오랜시간 우리나라의 희로애락을 같이 했지만, 잠 잘 보존되어 있는 것 같다.

표충사 삼층석탑과 석등이 놓였던 원래의 위치가 아닌 듯하다.

표충사의 원래 이름은 죽림사(竹林寺)인데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두번째로 크게 확장시켜, 이름을 영정사(靈井寺)로 고쳤다고 전한다.
조선 헌종 5년(1839)에는 그때까지 밀양군 무안면에 있었던 표충사(表忠祠)를 영정사로 옮기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개칭하였고, 가람배치도 큰 이동이 있었던 것이니 이 탑도 그 때에 옮겨진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기단(基壇)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으며, 각 면을 둘로 나누어 놓았고, 탑신부(塔身部)는 층마다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다.
1층 몸돌은 기단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형태로, 균형면에서 특이한 형태를 하고 있고, 표면 모서리에는 매우 넓은 기둥이 새겨져 있고 다른 장식은 없다.
2층 몸돌은 1층에 비하여 높이가 급격히 줄었으며 3층도 체감되어 있으며, 2·3층의 몸돌 모서리에도 기둥모양이 새겨져 있으나 너비는 전체가 축소됨에 따라 좁아졌다.
지붕돌은 밑에 4단의 받침이 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었으며, 지붕은 아름다운 곡선으로 흘러내리다가 네 귀퉁이에서 경쾌하게 치켜올려져 있다.
꼭대기에는 탑의 머리장식이 얹혀져 있으나 정돈되지는 못하고,  그 위에 1m 가량의 끝이 뾰족한 쇠막대를 세웠다.
탑신부 1층의 몸돌이 지나치게 커다란 단점이 있으나, 기단이 1단으로 구성된 신라석탑양식을 따른 아담한 탑이고, 탑의 머리장식도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서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자료참고 - 밀양 표충사 홈페이지 (http://pyochungsa.or.kr/)

 

3층석탑에서 오른쪽으로 보면, 영각이라고 하여, 표충사에 봉안되어 있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영정과 표충사를 뱇낸 역대 조사스님들, 중창주들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으며,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268호로 지정되어 있는 곳이다.

일반인들에게는 개방되지 않고 있어, 담장넘어로 구경하면 될 것이다.^^

 

삼층석탑을 뒤로 하고, 약간의 계단을 오르면, 좌측으로 팔상전(八相殿)과, 대광전(大光殿)이 보인다.

팔상전(八相殿))은 1854년(철종 5년)에 당시 주지였던 환월선사(幻月禪師)가 창건하였으며, 1926년 화재로 소실되어 1929년에 중창한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건물의 상태로 봐서는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건물이다.^^

내부에는 소조석가여래좌상만을 봉안되어 있으며,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141호로 지정되어 있다.

 

팔상전(八相殿)과, 대광전(大光殿) 맞은편에는 우화루(雨花樓)와 범종각(梵鐘閣)이 나란히 서 있는데, 우화루는 원래 중심법당인 대광전으로 들어서는 중문의 역활로 최근까지 사용되어 지다가, 근래에 가람을 정비하면서 진입로가 현재의 위치로 바뀌어다고 한다.

우화루는 야외참선 장소로 쓰인 곳으로, 루에서 올라서 내려다보면, 남계천 맑은 물이 발아래 깔린다고 하니, 이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 참 멋지고 좋은 것 같다.

 

대광전(大光殿)은 표충사에서 가장 큰 법당이다. 이 법당에는 모든 번뇌와 미혹을 밝혀서 불멸의 생명, 무한한 행복과 영원한 자유를 이룬 부처님이 계신다. 스스로 이기심과 탐욕과 어리석음을 불러 일으켜서 마음을 산란하게 하고 눈 멀게 하는 중생을 향해 무궁무진한 법문의 세계를 펼쳐 놓으신 곳이 바로 법당이다.

표충사 대광전은 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화재나 병화(兵火)로 쇠실도어 중건과 중수가 이어졌다고 하며, 현재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31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여기서 잠깐, 보통 사찰에 가면, 가장 큰 법당을 대웅전(大雄殿) 또는 대광전(大光殿)이라는 편액을 많이 접했 을 것인데, 도대체 이 대웅전과 대광전의 차이가 무엇일까? 매번 이런 사찰을 방문할 때 마다 궁금했었는데 한번 알아보자.

대웅전(大雄殿) - 석가모니 부처님만을 봉안한 전각으로 대웅리란 말의 뜻은 인도의 옛말 마하비라를 한역한 것으로, 법화경에서 석가모니부처님을 위한 영웅, 즉 대웅이라 일컬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대광전(大光殿) -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의 줄여서 부르는 것으로,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부처님이 두루 비치는 빛, 즉 광명이나 적광의 성질을 갖고 있어 이렇게 이름 지어진 것이다.

이렇게 가장 큰 법당에 어떤 부처님을 모시는가에 따라서 법당의 이름이 바뀌는 것 같다.
나와 같이 종교가 전혀 다른 사람이 혹시나 궁금할 것 같아서, 한번 찾아서 적어 보는 것이다.하하하 

그런데, 이곳 표충사 대광전에는 삼존불이 모셔져 있다고 한다. 삼불존은 석가모니불[각주:2],약사여래불[각주:3], 아미타불[각주:4]이며, 이들 부처님은 중생의 염원과 가장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기에 전통적으로 우리나라에서 깊이 신봉되어 왔다고 한다.

 

표충사 대광전 뒷편에 조그마하게 자리잡고 있는 산영각(山靈閣)과 독성전(獨聖殿)을 겸하고 있는 산신각(山靈閣)이 있다.
어떠한 복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이곳에서 신도 한분의 기도하는 뒷 모습에 애절한 염원과 바램이 담겨있다.

산신각(山靈閣)은

독성각에는 나반존자상과 후불탱화로 독성탱화를 안치하는데, 사찰에 따라 탱화만을 배치하기도 한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 선정을 닦아 나도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능력을 갖추고 스스로 중생들의 복을 이루는 복밭이 되어, 미륵불이 출현하는 용화세계가 올 때까지 이 세상에 머물러 계시리라 하였다. 그래서 인지 특별히 복을 희구하는 신도들의 경배대상이 되고 있다.

산령각 산신은 백발노인으로 묘사되고, 호랑이는 산신의 지시에 따르는 영물로 산신 옆에 배치된다. 
삼신산을 배경으로 손에는 부채나 불로초 등을 들고 대머리에 수염과 긴 눈썹이 휘날리는 모습을 그린 산신탱화를 산신각에 안치한다.

 

표충사 경내에서 가장 뒷편에 자리잡고 있는 명부전(冥府殿)과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치만, 바로 옆에 관음전(觀音殿)이 있다.
이 표충사는 다른 사찰과 거의 같지만, 군데군데 중요한 전각 마당앞에는 잔디를 깔아 놓고 있어, 운치있고 편안함이 존재하는 사찰인것 같다.

명부전(冥府殿)은

지옥에 계신 어머니를 구하고 지옥으로 떨어진 모든 자들이 구원될 때까지 지옥세계에 계시겠다는 서원을 세운 지장보살과 죽은 자의 삶을 평가하고 형벌을 정하며, 새로 태어날 세계를 결정하는 심판관 역할을 하는 시왕(十王)이 계신 전각이다.
그래서 지장전, 또는 시왕전이라고도 하며, 저승과 이승을 연결하는 전각이므로 쌍세전(雙世殿)이라고도 한다.
사람이 죽으면 그 날로부터 49일 되는 날까지 7일째마다 차례로 7번 시왕 앞에 나아가 생전에 지은 죄업(罪業)의 경중과 선행· 악행을 심판 받는다고 한다.
불가에서 49재(四十九齋)를 지내는 까닭도 여기서 연유하며, 명부전에서 재를 지내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바탕으로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밝혀 좋은 곳에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뜻에서이다.

어떤 종교이든, 삶과 죽음, 천국(극락)과 지옥, 그리고, 윤회(輪廻)/부활 의 기본 맥락은 똑같은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고 의지하며 자신의 간절함을 호소하는 일정의 예식 또한 같다. 다만, 그 신(神)의 존재만 다를 뿐.   

 

이곳 밀양 표충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通度寺)의 말사이다. 말사는 말그대로, 본사에 소속되어 있는 조그마한 사찰을 뜻하지만, 표충사의 규모는 말사를 뛰어 넘는 듯한 인상이다.

생각보다 작지 않은 표충사는 사방으로 가지산, 운문산, 제약산을 뒷배경으로 두고 있고, 양수가 모여 나가는 안쪽에 자리한 천하의 명당으로 미래에 구세성자가 여서명이 더 나오기로 예언된 곳이라고 한다.

가장 안쪽에서 바로 본 표충사의 전경 참으로 멋지지 않는가.. 하하하

 

표충사 경내의 멋진 모습이 더 많이 있다.

 

경내를 한바뀌 돌고 내려오는 길에, 목마름을 달래 줄, 시원한 약수 한바가지 하고, 귀여운 동자승과 잠시 눈인사를 나눴다.

이곳은 영정약수(靈井藥水) 다.
신라 흥덕왕 4년에 왕의 셋째 왕자가 나병에 걸려 명의, 명약을 찾던 중 황발선인이 소문을 듣고, 이곳에 찾아와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이에 왕이 친히 선사를 찾아와 크게 칭송하나 황발선인이 말하기를, 이곳 산초와 유수가 모두 약초요, 약수라 하였다.
왕은 그말에 감탄하여 탑을 세우고 가람을 부흥시키고 산 이름을 재약산이라 하고, 사명 또한 영정약수의 이름 따서 영정사라 하였다.
지금도 이 영정약수를 찾는 발길이 하루도 끊이지 않고 있다.

나 또한 이곳이 영정약수이고, 위에 글처럼 유명한 내력을 가진 약수인지는 약수자리 옆에 있던 표지판을 보고서야 알았지만, 나 뿐만 아니라 이곳 찾은 많은 방문객들도 이곳이 어떤 약수인지, 알고 먹는 사람들는 크게 없는 듯했다.하하하하

 

무지하게 더웠던, 표충사의 여행. 참 더웠지만, 결코 덥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곳이다. 그리고,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혼자 여행은 좋은 것도 있지만, 혼자만의 여행은 결코 좋치많은 않는 것 같다. 대부분 여기에 오시는 관광객들은 가족 아니면, 연인들, 혼자 뚜벅거리며, 돌아 다니는 사람은 나 혼자밖에는 없는 것 같다.

이렇게 기회를 준 아내에게 참으로 고맙다고 해야하지만,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면, 같이하지 못해 더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청량한 여름에 찍었던 사진의 모습이, 지금 현재 온 산과 경내에 있는 푸르름은 이제 알록달록한 오색 빛깔의 옷으로 갈아입었을 것이다. 가을의 표충사는 꼭 한번 느껴보고 싶은 곳이다. 그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때는 "같이" 라는 단어로 만나보고 싶다.

 

밀양 표충사 지역정보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기차 (일반, KTX) -> 밀양역 -> 역 바로 앞 정류소 -> 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모든 시내버스 -> 약 20분 소요 -> 밀양시외버스터미널(시외버스 이용시 바로 환승) -> 표충사행 버스 -> 약 40분 소요 -> 표충사 종점 하차 -> 도보 약 20분 -> 표충사 도착

밀양시외버스터미널 -> 표충사행 버스 출발 시간표
07:35, 08:45, 10:10, 11:20, 12:40, 14:20, 15:00, 16:40, 17:30, 18:20, 19:20, 20:20
※ 출발시간은 변경될 수 있으며, 자세한 문의는 밀양시외버스터미널 055-354-2320 문의

자가차량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구천리 31-2번지)
대구부산고속도로 -> 밀양IC -> 24번 국도 밀양IC교차로 -> 울산/언양 방면으로 우회전 -> 5.9Km -> 금곡표차로 -> 단장/표충사 방면 우측방향 -> 320m -> 금곡교차로 에서 우회전 -> 3.11Km -> 표충사 주차장 도착

■ 지도정보

 

기획/글/사진 : 서관덕
촬영 : 2012-08-02

 

비슷한 지역 추천 여행지 : [밀양 여행] 영남루 -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곳!!

 

  1. 본사(本寺)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 또는 본사에서 갈라져 나온 절 [본문으로]
  2.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 부처님을 형상화한 불상 [본문으로]
  3. 동방 유리광세계의 주인.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며 재화를 소멸하고 의복, 음식 등을 만족하게 하는 등의 12대 서원을 세운 부처님이며, 손에 약함을 들고 있다. [본문으로]
  4. 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며 그의 광명과 자비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무한한 세계에까지 미 치며 그 광명을 받은 사람은 모든 고통이 사라진다고 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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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10.30 09:17
    비밀댓글입니다
  1. 얼핏보면 강화 전등사와 비슷해 보입니다. ^^
    그나저나 밀린 숙제 다 하셨으니 후련하시겠습니다. ^^*
  2. 잘 보고갑니다 ^^ 날 좋을때 한번 찾아가보고 싶군요~ ^^
  3. 밀양표충사... 가족과 함께 다녀온곳이라..
    넘 반가우내요^^
  4. 단아한 아름다움이 참 이쁘고 좋습니다.
    밀양 꼭 한번 가봐야겠네요
  5. 밀양표충사 덕분에 구경 잘하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6. 잘보고 갑니다^^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ㅎ
  7. 사진만으로도 당일의기온이 느껴지네요^^
    근데 표충사 자리가 안지- 명당자리인가 보네요.. 웬지 기운이 솔솔
  8. 저도 언제 기회되면 한번 가보고 싶네요..ㅎ
    잘보고 갑니다~
    행복한밤 되세요~
  9. 잘 보고 간답니다 ^^
    기분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10. 덕분에 아름다움이 있는 곳 너무 잘 보고 갑니다..^^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래요..!!
  11. 덕분에 좋은 곳 너무 잘 보고 갑니다^^
  12. 행복하고 신나는 하루 되시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