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여행] 영남루 - 풍류와 시정이 넘치는 곳!!

풍류와 시정(詩情)이 넘치는 곳 밀양 영남루 우리나라 최고의 아름다운 명루이다. 이 아름다운 영남루와 천진궁, 아랑사또전으로 유명해진 아랑전설이 있는 아랑사로의 여행을 시작해보자

아마 밀양은 두번째인것 같다. 첫번째는 몇년전 아는 지인분의 웹사이트를 제작하기 위해서 공장 답사겸, 취재를 목적으로 한번 찾았고, 그리고 올해 8월 그 무더웠던 한 여름의 중간에서 또 한번 찾았다.

이름하여 여름휴가.ㅋㅋ
남들은 가족과 함께 계곡이다. 바닷가다 해서 다들 떠나는데, 나는 나혼자 떠나는 여름휴가를 맞이했다.하하하
집사람이 나에게 주는 조그마한 배려가 담겨있는 선물..^^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보물 제 147호로 지정되어있는 영남루는 조선시대 후기의 대표적인 목조 건물로, 신라 경덕와(742~765)때 이자리에 있었던 영남사의 부속 누각에서 유래가 되었으며, 고려 공민왕(1365)때 김주(金湊)가 밀양 부사로 부임해 새로이 다락을 높게 신축하여 엉남루라 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4년 이인재(李寅在)부사가 중건한 것으로, 조선시대때부터 진주 촉석루, 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루로 일컬어 왔다.

 

영남루로 올라가는 길은 갈 지(之)자 형식으로 지그재그올라가는 길이 새롭다.
개인적으로 이 영남루는 이번이 두번째 방문이다. 예전에도 일을 마치고 잠시 들러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는데,ㅎㅎㅎ
그 사진들은 어디에 어느 블로그에 붙어있는지 찾지를 못했다.하하하

한 여름이지만, 맑고 청명한 하늘이 꼭 시원한 가을날씨를 연상케하는데, 전국에서 가장더운 밀량의 이날 날씨는 무려 36도를 육박한 듯 하다.ㅡ,.ㅡ;

 

낙동강의 지류인 밀양강변 절벽위에 위치한 영남루
1931년 조선 16경 중의 하나로 선정될 절도로 그 경관이 수려하다.
본루를 기점으로 좌측에는 능파각을, 우측에는 침류각을 익루로 거느리고 있고, 정면 5칸, 측면 4칸의 2층 다락형으로 웅장한 기풍을 가지고 있다.

이곳의 영남루는 다른 볼꺼리는 크게 없다. 영남루 자체가 볼꺼리의 전체이다.
하지만, 절대 휑하거나 하지 않다.

 

영남루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다.
뜨거운 볕을 피해 이곳 영남루에는 이미 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하나씩 차지하고 무더운 여름을 식히고 있는 모습이 참 시원해 보인다.하하

그렇다. 다락형 영남루에 올라서는 순간 밀양강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온몸을 감싸며 지나갈 때는 정말 시원했다. 아니 이곳에 있는 것 자체가 시원함의 연속이였다.
이렇게 시원한 곳이 이런 곳에 있었구나. 이곳에서 살았으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하하하

 

영남루를 천천히 돌아보며, 루에서 바라다보는 줄거움이 곳곳에 있다.
특히 밀양강 넘어로 보이는 밀양시의 모습과 영남루가 절묘하게 잘 어울리는 풍광도 보이고, 침루각과 본 누각 사이에는 달월(月)자 형의 층층강이라는 계단형 통로로 연결되어 있어, 다른 곳에서는 잘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

 

영남루 누각안 내부 구조는 정말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기둥과 기둥사이을 연결한 충량과 퇴량은 물론 대형 대들보에는 화려한 용신으로 조각되어 있고, 누각 곳곳에는 당대 내놓라고 하는 명필기나 대문장가들의 시문 현판들이 즐비하게 걸려있는 모습이 이곳이 과연 불허명전이다 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 중에서 위 사진에 있는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라는 현판과 사진에는 없지만, 영남루(嶺南樓)라는 현판은 1843년부터 1844년까지 이 건물을 중수할 당시 이인재 부사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인 이증석(당시 나이 11세), 이현석 (당시 나이 7세) 형제가 썼다고 한다.
과연 11살 짜리와 7살 짜리가 저 거대한 현판의 글씨를 썼을까??? 체구도 작은 어린 친구들이 거대한 붓을 들고 썼다고 상상하니 언듯 믿기질 않는 불가사의한 사실로 다가온다. 그래서인지 서예가들로부터도 불가사의한 필력을 가졌다고 지칭되어진다.

영남루 사진 더보기

영남루의 야경은 이번 여행에서 볼 수는 없었지만, 영남루야경은 밀양 8경중 하나로 손 꼽히고 있고, 밀양강을 끌어안은 풍광은 영남을 대표하는 아름다움 그 자체이다. 누각의 처마 끝에서 눈을 감고 서 있노라면, 그 옛날 시(詩)한수에 풍류를 즐겼을 성현들의 즐거움을 이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시원함과 눈을 맑게하는 아름다운 풍광을 뒤로 하고 누각을 내려오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다.

 

영남루와 마주하고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만덕문(萬德門)이라는 이름의 삼문뒤에 있는 천진궁(天眞宮)이 있다.
천진궁은 현종 6년 (1665)에 부사 홍성구가 창건한 요선관(邀仙館)이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허종 10년(1844)에 부사 이인재가 크게 보수 하였다.
고종연간에는 군수 이도재가 중수하여 장전패한 개사 건물로 계속 사용하였다가, 1910년  경술구치를 당하여 전패는 땅에 묻혔고, 객사의 기능은 해제된 채, 일본 헌병들에 의하여 강점 당하여 옥사(獄舍)로 사용되였고, 1957년에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곳도 영남루와 마찮가지로 일반인들에게 개방되어 있어, 누구나 방문할 수 있고 참배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천진궁(天眞宮)은 단군 아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으로, 중앙 수좌에는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동쪽 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락, 고려시조왕의 위패를 모시고, 서쪽 벽에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조의 위패를 차례로 봉안하고 있다.

광복 후 지역의 유지들이 뜻을 모아 발조한 단군 봉안회가 1956년부터 단군봉안전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을 어천대제(御天大祭), 10월 3일 개천대제(開天大祭)로 춘추제향(春秋祭享)을 올리고 있다.

천진궁은 1974년 12월 28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지정되었다.

 

천진궁 사진이 더 있다. 클릭 한번^^

영남루(嶺南樓)의 부속건물로서 효종 3년(1652)에 창건되었으며 공진관(栱桭館)이라 부르기도 하는, 이곳 천진궁에 대한 자료를 검색하다보니 밀량시에서 제공하는 정보와 문화재청의 정보가 조금 다른 관계로 조금 혼돈이 생기는 곳이도 하다.하하하

 

영남루 앞 마당에 마치 새겨놓은 것처럼 장식하는 꽃무늬를 닮은 바위돌들이 있는데,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영남루 주위에 산제해 있는 석화다.
이 석화는 그냥 봤을 때는 잘 표시가 없다가, 비가 오는 날이나, 물을 뿌리면 그 모양이 선명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아랑사(阿娘祠) 또는 아랑각(阿娘閣)이라는 이름의 조그마한 사당이 영남루 절벽 아래쪽 볕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처음 찾았을 때는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몰랐다. 볕은 정말 좋은데, 왠지 모를 음산한 분위기가 빨리 발길을 돌리도록 만들었었는데, 이후 이곳의 사연을 알고는 다시금 찾았던 곳이다.

아랑(阿娘)은 명종(1545-1567) 때 밀양부사(密陽府使)의 딸로서 성은 윤(尹)씨이며 이름은 "정옥(貞玉)" 혹은 "동옥(東玉)"이라 하고 나이는 16세쯤 되는 재기(才氣)가 넘치고 자색(姿色)이 뛰어난 규수(閨秀)로 전해져 온다.

슬픈 전설을 가지고 있는 아랑각(阿娘閣)은
건립연대는 미상이며, 1878년 영남루의 위치와 건립배경, 취지 등에 대한 여러 글을 모은 '영남루 제영(題詠)'에 이곳에 관한 기록으로 추정되는 노승원(老僧院)과 열녀사에 관한 글이 있다. 아랑낭자의 억울한 죽음을 애도하고 정열(貞烈)을 연민하여 영남루 아래 아랑의 시신이 떨어졌던 대밭에다 열녀사(烈女詞)라는 사당을 짓고 매년 4월 16일에 제사를 모셔 왔는데, 세월을 이기지 못한 종래의 건물이 초라하고 낡았으므로, 1965년에 들어 지역민과 출향인사들의 성금과 당국의 보조로 현재의 아랑사(阿娘詞)을 중건하기에 이르렀다.

 

아랑각에서 혼자 외로이 있는 아랑각시의 영정
아랑 영정은 1963년 고 육영수여사께서 이당 김은호 화백의 솜씨를 빌어 제작한였다고 한다.

이 사진을 8월 초에 찍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많은 사람들이 찾지 않았다. 내가 이곳을 두번 찾았지만 그때마다 이곳은 단 한사람도 구경하지 못했다.
지금은 MBC에서 하는 아랑사또전이라는 드라마의 힘 입어, 참 많은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더이상은 이곳의 아랑이 혼자 외롭게 있지 않아도 될 듯하고, 더이상 음산하는 느낌도 없을 것 같다.

 

아랑전설 아랑각시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자.


 

위쪽 영남루에 비해 너무나도 조용한 아랑각에서 바라본 밀양강은 너무나 조용하게 흘러흐러간다.
이곳에 서서 밀양의 조그마한 일부분을 느끼고 있다.

슬픈 사연을 담고 있는 아랑사 사진 조금더 있다.

이곳 아랑각을 뒤로 하고, 하루의 짧은 나만의 휴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뚜벅이로 돌아다닐 수 있는 것이 한정이라, 표충사와 영남루 단 두곳만 다녀왔지만, 처음과는 또다른 느낌으로 다가온 밀양의 새로운 모습을 보았고, 밀양 곳곳에는 참 볼꺼리도 즐길 꺼리도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찾고 싶은 곳이다.

밀양 영남루 누각에서 느꼈던 시원함을 또 한번 느껴보고 싶다.

 

밀양 영남루 지역정보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기차 (일반, KTX) -> 밀양역 -> 역 바로 앞 정류소 -> 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가는 모든 시내버스 -> 약 10분 소요 -> 영남루 도착 
시외버스 -> 밀양시외버스터미널 -> 시외버스터미널 맞은편 정류소 -> 밀양역 방향으로 가는 모든 시내버스 -> 약 10분 소요 -> 영남루 도착

자가차량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40번지)
대구부산고속도로 -> 밀양IC(남밀양IC) -> 약 10~15분 소요 -> 영남루 도착

■ 주변여행 정보

- 무봉사
무봉사는 영남루 뒷길 아랑사로 내려가는길과 갈라지는 위쪽으로 올라가면 있는 조그마한 사찰이다.
신라의 5대 명사중에 하나였던 영남사의 부속 암자로 법조라는 고승이 창건했다는 설화가 있으며, 경내 석조여래좌상(보물 제 493호)은 통일신라시대에 화강암으로 조성한 걸작이 있다.

- 밀양관아
영남루에서 시외버스터미널 방향으로 걸어서 약 10분, 버스로 한두정거장 들어가면 있다.
밀양관아(동헌)는 조선초에 건립된 후 1592년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어 1612년 밀양부사 원유남이 중건했다가, 1894년 농민항쟁 당시 습격당하고, 일제가 근대적인 관청을 짓는 과정에서 완전히 철거된 것을 2010년 4월에 복원공사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 지도정보

기획/사진/글 : 서관덕
촬영 : 2012-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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