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향교 - 전통과 현대를 잇는 곳

역시 봄은 사람을 활발하게 만드는 계절인것 같다.

날씨 좋은 토요일인데, 특별히 할 것도 없고, 아이들과 집사람은 토요일에 하는 도서관 문화센터로 가버렸고, 방바닥만 만지작 그리기에는 너무나 억울했던 날, 예전부터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대구에서 유일하게 단 한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을 찾아 잠시나마 다녀왔다.

대구향교..
아이들에게 향교로 사진찍으로 간다니까 대뜸 향교가 뭐하는 곳이냐고 뭍는다. 움... 향교가 뭐하는 곳이지????

내가 아는 향교는 공자를 스승으로한 유교이념 및 학문, 서민들의 교육을 담당하던 곳이라고 알고 있고, 요즘은 전통혼례와 각종 인성교육과 예절교육등을 하는 곳으로 알고 있는데, 자세한 내막은 모른다.
캬,, 학교댕길 때, 역사공부나 제대로 쫌 해놀껄.. 학생일 때 공부안한 것을 지금에서 후회하다니..ㅡ,.ㅡ; 아이들에게 해줄 말이 없다.ㅡ,.ㅡ; 자자자.. 우리 모두 공부합시다.ㅎㅎ

대구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교동에 창건되었다.
당시에는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었으며, 1400년에 불타자 곧 재건하였고 임진왜란 때 다시 소실되어 1599년(선조 32) 현재의 달성공원 부근에 재건하였다.
1605년 교동으로 이건하여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1932년에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명륜당·동재(東齋)·서재(西齋)·문묘·삼문 등이 있으며, 향교내에는 대구성(大邱城)의 축성 및 유래를 기록한 축성비와 수성비, 경상도관찰사·판관·군수 등을 지냈던 사람들의 불망비(不忘碑)·송덕비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한국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현재 향교에는 해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올리며, 한문교육·예절교육 등 다양한 전통교육을 담당할 뿐만 아니라 전통혼례식장으로도 활용된다.

 

공자(孔子)의 가르침이 있는 곳으로의 짧은 기행을 해보자.

 

 앞에서도 애기했지만, 대구향교는 이 골목 앞으로 지나간 역사도 없는 곳이라, 또 저번처럼 이리저리 기웃거리까봐 처음부터 정확하게 위치를 알아두고 떠났다.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하하하 대구향교도 다른 서원이나 유적지 처럼 출입구를 알리는 외삼문으로 되어 , 중앙에는 큼지막한 태극이 나를 반겨주고 있다.

소박하지만, 위엄있어 보이는 외삼문은 도심한복판에 있는 관계로, 전통과 현대적 기술이 적절하게 혼합되어 있다.
조금은 아쉽다. 콘크리트 대리석 계단이 아닌, 돌계단으로 쌓았다면 훨씬 좋았을 것 같다.

퀴즈? 계단 중앙에는 양 옆계단을 이용하세요 라고 적혀 있는데, 왜 중앙이 아닌 양 옆으로 다니라고 할까요????
(맞추시는 분들에게는 나중에 따뜻한 차 한잔 대접해드리죠..^^)


두근두근 콩닥콩닥.. 설렌다. 마음에만 두고 있었던 곳을 볼 수 있다니..
열려진 대문 사이로 향교의 전경이 눈에 들어온다.  

아~ 생각보다 꽤 넓다라는 것이 처음 입구에서 바라본 향교의 느낌이고, 전체적으로는 다른 곳과 비슷하다.


향교에 들어서자 마자, 광셔터질을 한다. 급한 마음에 찬찬히 둘러볼 생각은 안중에 없고, 셔터부터 눌러대는 내 모습이 한심스럽게 느껴지는, 참 부끄러운 순간이다.

물론 사진찍는게 목적이지만, 찬찬히 음미하면서 찍어야된다는 기본 상식을 벗어난 참 치졸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각성하자 서관덕....


서재건물 벽면에 빼곡히 적혀있는 수많은 이름과 그 이름 밑에는 기부한 것으로 보이는 금액이 적혀있다.
아마 명륜당 앞에 있는 낙육제와 동재서재를 건립하면서 기부 받은 금액과 기부자 명단이것 같다.ㅎㅎ
※ 동재와 서재는 창건때에는 존재하고 있었지만, 이건할 때 건립하지 않았다가, 1990년 낙육제를 중건하면서 동재서재도 같이 건립되었다.

보통의 경우에는 기부/기증자 표지석에 적는 데, 어떻게 보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또 어떻게 보면 참 저렴(?)하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다.ㅎㅎ
벽면에 붙어 있는 명단이 참 이채롭다.


명륜당(明倫堂)
향교 건물 중 대성전과 함께 부설된 기본건물로 대구지역 유생들이 모여 학문과 도의를 강학하던 곳으로, 지역에 많은 인재를 육성하고 배출하였다.
이 건물은 1974년 건물의 노후화로 콘크리트 와즙으로 중건하여,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

명륜당은 멀리서 보면, 잘 못느끼는데 가까이서 보면 다른 건물과 다른 현대적 기법과 전통적 기법이 공존하는 건물이다.^^

명륜당 앞에 나란히 하고 있는 두 건물은 명륜당의 부속 건물로 동재서재로 불리우는 기숙사다. (사진으로 봤을 때) 좌측에 있는 것이 동재, 우측에 있는 것이 서재이다.
동재는 양반들의 기숙사이고, 서재는 일반 평민들의 기숙사로 알고 있는데, 맞는지는 모르겠다.ㅎㅎ
이런 동재서재는 향교 말고도, 서원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도동서원 기행

그리고, 동재와 서재에 붙어 있는 청사초롱이 특이한데, 이곳 명륜당 앞마당에서 전통혼례와 기로연, 전통성년관례등 행사가 자주 이루어지는데, 예식이 있을 때 마다 설치하는 것이 번거르운지 상시로 걸려있다 라고 생각한다.ㅎㅎ.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다큐멘터리는 사실적이고 있는 그대로의 내용을 전달해야 하는데 말이다.ㅎㅎ)


명륜당 맞은 편에는 낙육제라는 예전 관립 도서관이 자리하고 있다.
낙육제는 본래 향교 건물이 아니고, 경상감영 부설 도서관이자, 장학재단으로 인재양성과 문풍진흥을 목적으로 1721년에 설립되었다가, 갑오경장때 일제에 의해서 모든 학교운영을 방해해 옴에 따라 낙원제를 철폐켰던 것을 1990년 10월에 향교내에 재건하였다.

낙육제(樂育齋)
地方文化(지방문화)를 살찌게 했던 嶺南樂育齋(영남낙육재)는 1721年(년) 大邱(대구)에 設立(설립)된 官立圖書館(관립도서관)의 産室(산실)로서 齋生(재생)을 選拔(선발) 奬學金(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學文硏究(학문연구)에 큰 功績(공적)을 남긴곳이다.
景示元年(경시원년:1721년) 黨是(당시) 慶尙監司(경상감사) 趙泰億(조태억)이 人材養成(인재양성)과 文風振興(문풍진흥)을 目的9(목적)으로 基當時(기당시) 大邱府(대구부) 南門(남문)밖(現在(현재) 大邱市(대구시) 南門洞(남문동) 文友館(문우관)에서 東山(동산)양말 工業社一제)에 設立(설립)하였는데 이곳에는 慶尙道內(경상도내)의 有能(유능)한 선비들을 選拔(선발)하여 寄宿(기숙)시켜가며 讀書(독서) 및 學文硏究(학문연구)에 이바지하게 하였다.
1894年(년)에 甲午更張(갑오경장)으로 地方制度(지방제도)가 改編(개편)되고 日帝統監府(일제 통감부) 設置後(설치후)에는 朝鮮人(조선인)의 모든 學校運營(학교운영)을 妨害(방해)해 옴에 따라 樂育齊(낙육제)를 撤廢(철페)시키고 基(기:그) 財産(재산)으로 協成學校(협성학교)를 設立(설립)하고 所藏(소장)되었던 藏書(장서)는 764冊(책)으로 現在(현재) 市立圖書館(시립도서관)에 所藏(소장)하고 있다.
또한 樂育齋는 讀書(독서), 詩(시), 賦의 製述硏學(제술연학) 等(등)의 知能(지능)을 가졌으나 文廟(문묘)나 祀廟(사묘)가 없는 것을 特徵(특징)으로 볼 수있다.
이를 復元(복원)하기 위하여 大邱市(대구시) 補助金(보조금) 및 大邱鄕校財團(대구향교재단) 自體資金(자체자금)으로 1990年 10월 7일 鄕校(향교)내에 再建(재건)하였다.

특별하게 설명을 붙이지 않아도 누군지 확실하게 알것 같다.^^

위치상으로 거의 향교가장 중심에 위치하고 있는 공자상
대구와 자매도시인 중국의 청도시에서 기증한 것으로, 백옥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위치덕분에 향교 어느 곳이든 이 공자상은 볼 수 있으며, 워낙 색이 강해서 유교의 창시자 답게 돗보인다.^^


아직 4월이라, 연못에 물은 흐르지 않지만, 이곳에 물이 흐르면 정말 운치 좋은 풍광을 연출할 것 같다.^^
대구향교가 크지는 않치만, 유교를 공부하는 유생을 위한 조그마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든다.^^


대성전 내삼문 맞은편에는 양사제 건물이 보인다.
이 양사제 뒤편으로는 하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 데, 그기에는 여성유도회, 여성예학연구원의 교육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앙사제(養士齊)는
창건당시의 위치는 현 교동이며 향교구내 동신문바깥이다. 이조시대 영조병술:1766년에 판관:시장 김노에 의 설립되었으며 영조 정해(1767년) 7월에 관찰사:지사 김응이 기을 쓰고 술자:1768년 늦 봄에 판관:시 김노가 기문)을 쓰다.
매년 춘추로 본 향내의 유생들을 선발하여 기숙  강학하였으며 향교에서 향시를 치룰 시는 과장으로 사용한곳이다.

그 후 1991년 12월 28일 이곳에 양사재를 복원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상층 32평, 하층 46평으로 재건하였다. 하층은 대구향교 여성유도회 여성예학연구원의 교육도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대성전과 양사재를 이어주는 내삼문.
일년에 두번 있는 석전대제(2, 8월 상정일) 등 큰 행사가 있을 때에만 이 문이 열리고, 평상시에는 동소문을 통해 출입한다고 한다.

석전대제란
공자를 모시는 사당인 문묘에서 지내는 큰 제사를 가리키며, 예법과 음악이 존중되는 국가의 의례이다. 일명 문묘대제, 석전제(고기를 올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의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유교가 전된 기록은 없지만, 최초로 태학(유교 교육을 위한 국립중앙대학)을 설립한 것은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년)으로 석전도 고대 중국의 제사관례에 따라 행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대구광역시 문화재 자료 제1호인 대성전
이 대성전은 쉽게 말해서 제실이다. 유교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곳으로, 매년 춘추로 선전대제를 올는 곳이다. 일반적으로 제사등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부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 이것을 거의 서원이나 향교등 제실을 두고 있는 곳은 똑같다.

참고로, 향교에 계시는 해설사를 동행하면, 자세한 유교적인 내용과 향교에 대해서 설명들을 수 있으며, 대성전까지 들어갈 수 있는 행운이 주어진다.^^
넓은 마당 중앙에는 대성전이 양 옆으로 동무와 서무가 위치하고 있는 정말 조용하고, 잘 정돈되어 아무도 없는 곳이지만, 고위한 위풍이 느껴지는 곳이다.

이 곳에 모셔져 있는 성현은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중국의 5성현의 위패와, 설총, 정호, 안향, 김굉필, 조광조, 이황, 이이, 김장생, 김집, 송준길, 최치원, 주희, 정몽주, 정여창, 이언적, 임인후, 성혼, 조헌, 송시열, 박세채등 송조 2현, 신라조 2현, 고려조 2현, 조선조 14현 총 스물다섯분의 위패가 있다고 한다.
(원래 송조 2현과 동국 18현의 위패는 대성전 앞에 있는 동무와 서무에 모셔졌는데, 1949년에 대성전으로 옮겨 모신다고 한다.)  

대구향교 대성전(大成殿)
대구 향교와 역사를 같이한다. 태조 7년 (1398년)에 교통에 창건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 전부 소실된 것을 7년 뒤인 선조32년(1599년)달성원에 재건하였으나, 사갈지조로 위치가 부적당하여 선조 38년(1605년) 다시 교통으로 이건하였다.
그 후 도시가 확장되고 유림의 집회로 항일운동 봉쇄를 위하여 1932년에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1973년 시에서 향교를 보수정화하고 전통적인 유교문화의 진흥을 위하여 영남각지에서 유림들이 모여들어 연2회 춘추중월(2,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공포를 기둥위와 기둥사이에로 짜올린 다포식 건축으로 단층 맞배기와집이다.

에궁.. 사진을 찍었던 순서대로 정리를 하다보니, 가장 첫번째로 소개해야 할 대성전이 가장 마지막으로 밀려나버렸다.^^
뭐, 정석은 아니지만, 참관순서는 아마, 이 사진이 연재된 순서로 하면, 대구향교의 모든 진면목을 다 보고,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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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인데도, 많은 사람들의 왕래는 없는 것 같다.
이날 유림회관에 어떤 교육행사가 있었는지, 그곳에만 많은 교육참석자들만 있을 뿐, 정말 한적하고 조용하게 대구향교를 둘러 보았다.

개인적으로 유교에 대한 자세한 내막은 잘 모른다. 하지만, 우리 주위에 있는 이러한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우리나라 전통의 문화를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할 것 같다.

이번이 처음 방문이지만, 차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구경도 하고, 예절교육에 한번 참여시켜야 겠다.

대구향교의 규모는 크지 않다. 맘먹고 돌아다니면, 단 10분이면 다 둘러볼 수 있다. 하지만, 빠른게 움직이는 세상에서 느림을 가질 수 있는 행복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향교에 계시는 문화해설사님과 같이 동행하면서, 유교에 대한 이야기와 향교의 자세한 내막을 들어면서 구경한다면 정말 값지고 알찬 여행일 것이다.

 

대구향교 지역정보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지하철 - 1호선 명덕역, 반월당역 하차 - 남문시장 사거리(도보 약 5-10분) - 봉산가구거리 방향(도보 약 5-10분) - 도착 
버스 - 남문시장 정류장 하차 -> 남문시장 사거리(도보 1-2분) - 봉산가구거리 방향 (도보 약 5-10분) - 도착
(401, 420-1번 버스는 대구향교 부근에서 하차하면 된다.) 

자가차량
좁은 편도1차선 도로라서 노상주차는 힘들고, 향교에 지하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이용하면 된다.
가는 길은 남문시장 - 봉산가구거리 방향으로 약 1분 정도 운행, 봉산가구거리 4거리에서는 조금만 올라가면 도착한다.

■ 먹거리 정보
안타갑게 향교주변은 대부분 주거공간이 많아 특별하게 먹을 만한 곳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조금 걸어 봉산분화거리를 구경하면서 대구 중심가에서 맛난(?) 식사를^^

■ 지도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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