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근대골목투어 - 3.1운동길 (90계단)

이 사진은 작년 2011년 6월 6일 대구근대골목길 투어를 한답시고, 혼자 카메라 둘러매고, 대구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을 때 찍었던 사진이다.

그중에서 내일이 바로 3.1운동 제93주년이 되는 날이라 골목길 투어에서 만난 뜻깊은 장소가 있어 일부를 소개할려고 한다.

3.1운동
1919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여 전 민족이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으로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이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전승국의 식민지에서 최초로 일어난 대규모 독립운동이기도 하다.
[출처 - 네이버 백과 발췌]

지금까지 내가 3.1운동에서 대해서 뭔가를 잘못 알고 있었던 것 같다. 1919년 3월 1일날 전국 동시에 시작한 것이 아니라,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하여, 각 지역에서는 조금씩 다른 날짜에 시작한 만세운동이였다는 것이다.
대구는 1919년 3월 8일 신명학교(현 신명여고), 계성학교(현 계성고), 대구고등보통학교(현  경북고)등 학생과 서문시장 상인과 주민등 많은 군중이 시가행진을 하면서 "독립 만세"를 외쳤다라고 한다.

우리나라 근대역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에, 한줄기 밝은 빛을 찾고자 스스로의 힘으로, 유서를 작성하고 죽을 목숨을 다해 투쟁하고 항쟁했던 그 역사적인 곳을 3월의 차가운 풍광이 아닌 유월의 풍성하고 따뜻한 풍광으로 만나보자.

3.1운동길 또는 90계단길 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는 이 길은 당시 학생들이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을 하고 비밀통로 역할을 한 이 길을 통해서 약속장소인 큰장(서문시장) 강씨 소금집으로 갈 수 있었다.

3.1운동길의 명칭은 3.1운동 84주년해 3.1정신을 후세에 기리 전하고자 대구 3.1운동 길이라고 명명하였다.
비록 좁고 보잘 것 없는 언덕길이지만, 우리의 아품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사진을 찍으며, 연인들끼리 데이트를 할 수 있는 곳이다. 
 

3.1운동길 좌우벽에는 1900년대 초에 촬영되었던, 대구 중심의 모습과 3.1운동에 관련한 사진들이 설명과 함께 설치해 놓고 있다.
천천히 언덕을 내려가며, 이 사진과 글을 읽고 있으면, 그 시대로 되돌아 간듯한 느낌이 든다.


현재 신명고등학교(구 신명여자고등학교)내에 있는 신명 3.1운동 기념탑, 1972년에 신명여고 재학생이, 당시 전교생 50여명과 졸업생, 교사등이 참여한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운 탑이다.

기념탑 앞 약사에는
대구의 독립만세운동은 1919년 3월 8일에 일어나다. 이 날, 신명학교의 교사 이재인, 졸업생 임봉선, 이선애 등과 50여명의 전교생이 한마음이 되어 "대한독립만세"를 크게 외쳤다. 추애경, 최정술을 비롯한 일부 학생들은 대구 만세운동의 시발점인 큰장터에서, 이영현을 비롯한 통학생들은 동산교 근처에서, 그리고 김학진을 비롯한 20여명의 기숙사생들은 약전 골목에서 시민들과 합류함으로써 대구의 만세운동은 절정을 이루었다.
이에 다급해진 일본 경찰은 헌병과 육군 병력을 동원하여 총칼로써 우리 학생들과 시위 군중들을 마구 두들겨 패면서 잡아갔다. 이 때 붙잡힌 여학생들은 두 주간 구류에 처해졌으며, 이선애는 6월, 이재인, 임봉선은 1년 등 실형을 선고 받고 고통스런 옥살이를 치렀다. 그 밖에 거사 전날 밤 내교하여 밤을 새우며 태극기를 만들고 고향 보모님께 유서를 쓰며 비장한 각오로 거사를 준비하던 본교새들을 격려한 김무생은 2년, 박재원은 1년 6월, 그리고 신명학교 재직 당시에 학생들에게 민족독립사상을 심어 주었던 이만집은 3년, 김영서는 2년, 김희윤은 1년 6월, 신태근은 6월의 징역 선고를 받았다. 신명의 3.1만세 운동은 국권 회복과 여권 신장을 목적으로 하는 대한애국부인와 조선여자기독청년회의 활동을 통해서 꾸준히 계승, 발전 되었으며, 광복의 밑거름이 되었다.
이후, 임본선은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3.1운동길 언덕 90계단을 다 올라서면, 좌측으로는 대구 최소의 미국 선교사인 아담스 목사의 사택을 비롯해, 3동의 선교사 사택이 있는 동산병원 선교박물관이 정말 이쁘게 자리잡고 있다.
사진으로 보이는 건물은 선교사 사택으로 현재는 3동 모두 박물관으로 꾸며져 일반인에게 개방하고 있다.

선교 박물관 맞은편에는 거대한 두개의 종탑이 건물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로 제일교회 예배당으로, 1898년에 경북 최초의 기독교회인 남성정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하여, 1933년 제일교회로 개명과 함께 현재 약령시(약전골목)에 위치한 제일교회 예배당(대구광역시 유형문화제 제30호)을 증축하고, 1994년 현재의 동산병원 뒷편 언덕에 신축 이전하였다.
아마 이 제일교회의 거대한 두개의 종탑은 대구 왠만한 곳에서는 다 보일 것이다.^^ (여담으로 이 곳을 계산성당이라고 잘 못 알고 계시는 분들도 종종 있다.^^ 위치상 햇길릴 만도 하겠지만, 교회당 규모에서 너무나 차이가 많이난다.)

그리고, 또 하나의 유서깊은 곳이 계성성당이다. 대구 제일교회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계산성당은 우리나라 3대 성당중 하나로, 1899년 신축되어 1902년 화재로 전소된 후 증축되어 지금까지 이곳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다. 계산성당 역시 경상도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대한민국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대구에 근대 100년의 역사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 그리고, 수탈의 아픔을 이기고자,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투쟁했던 3.1운동의 역사의 현장이 있는 곳,
너무나 가까운 곳에 있지만, 발길이 잘 닫지 않았던 이곳으로, 여러분들의 자신과, 가족, 자녀에게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이 주는 내용이 무엇인지 다시 되짚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사진을 찍으면서, 또 이 글을 정리하면서 내내 내 가슴속에서는 무언가가 꿈틀거린다. 그 옛날 피눈물 흘리며 그렇게 되찾고 싶었던 나라를, 내 나라를 지금은 잘 지키고 있는 것인가?혼란스러운 지금의 정치, 행정, 경제, 민심... 깝깝하기 짝이 없는 내 나라는 지금 잘 지키고 있는가?

거대한 꿈을 꾸며, 지났을 저 가파른 언덕길을 바라보며, 내일의 대한민국을 꿈꾸어 본다.

P.S : 바뿌다는 핑계로, 포스팅을 못했는데, 지금부터는 자주 포스팅하도록 하겟습니다.
그리고, 대구근대골목길 투어 때 찍었던 다른 사진들도, 정리해서 계속 옴니버스식으로 계속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대구 3.1운동길 지역정보

■ 찾아가는 길

대중교통
서문시장 입구 하차 -> 동산병원 장례식장 -> 동산병원 선교박물관 -> 도착
계산성당 하차 -> 제일교회 방향 -> 엘디스리젠트호텔 뒷편 -> 도착

자가차량
이런 곳은 대중교통 이용하는 게 더 많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ㅋ 그리고, 이 주변으로 주차할 곳도 별도 마땅치 않음..ㅋㅋ 그나마 괜찮은 곳이 동산병원 주차장.^^

 ■ 주변에는

이곳은 대구 근대골목길 투어의 시작지점이다. 이곳에서 도보로 중심가에 위치한 종로까지 이어지는 근대역사를 구경할 수 있다.
이렇게 대구 중심가 한바뀌 도는데 대략 4시간 정도 소요된다.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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